자유게시판
2023 주일설교(요약6)
2025-01-13 10:15:50
박노성
조회수   75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사람은 말을 하며 사는데, 그 말이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또 사람은 일을 하며 삽니다. 그렇게 일을 할 때에도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말을 해도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하고, 일을 해도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감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돌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작은 것,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주일을 허락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23년의 추수감사주일을 맞게 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둘째로, 덜 되도 감사하고, 안 되도 감사하고, 부족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에는 온도의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제2차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제3차 전도여행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붙잡혔습니다. 가이사랴 감옥에 2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로 가서 주후 61년부터 63년까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힘입어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끝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처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지는 상황을 보고 중간에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는 처음부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관되게 중간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끝에도 결과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도, 중간에도, 마지막 끝까지 최선의 감사를 힘껏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50:1-6

  찬양은 하나님을 기리며 높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찬양은 찬양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또 찬양은 취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절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그래서 찬양은 호흡하며 살아있는 모든 사람의 거룩한 사명입니다.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요? 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능하신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극히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지극히 위대하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한 모든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다스리십니다. 지배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개입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인간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높은 담이 세워졌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 어떤 존재도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죄가 없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인간의 허물과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마침내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면 누구든지 구원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입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찬양해야 합니다. 손을 들어 찬양해야 합니다. 손뼉을 치며 찬양해야 합니다. 각종 악기로 찬양해야 합니다. 춤을 추며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뛰면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세세무궁토록 하나님 찬양이 계속되는 곳입니다.(계7:12) 그러므로 찬양을 통해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2

요한복음 15:1-8

  세상은 복잡합니다. 200개 이상의 나라가 있습니다.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할지라도 결국에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눠집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 구원 받은 사람,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지 않아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의 사람, 영원한 불못의 지옥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의 사람, 영생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마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른 가지는 거둬서 불로 태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계속 반복해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마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열매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지배 속에 삽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속에 하나님나라가 세워집니다.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헛수고가 없습니다.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넉넉한 결실을 거둡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0의 인생이 됩니다.

  특히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죄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는 절대로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합니다. 이 죄의 문제를 풀어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롬5:21) 그래서 오직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1

요한복음 13:31-35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고별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31절에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예수님께는 십자가가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의 길을 향해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매우 강조하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의 믿음이 파산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큰 영적 위기였습니다. 이와 같은 환난과 시련에서 무엇이 제자들로 하여금 그 어려운 순간을 담대하게 견디고 버티게 할 수 있을까요?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세속적 쾌락인가요? 모두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살릴 수 있는 영적인 힘, 강한 능력, 꺾이지 않는 에너지를 사랑으로 보셨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사랑을 해야 할까요?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이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큰 사랑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서로는 제자들입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며 살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미움을 축복으로 바꿔주십니다. 무관심을 관심과 배려로 바꿔주십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사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험케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나라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2

요한복음 13:31-35

  모든 삶의 근거와 기준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면 그 사람이 예수님의 진짜 제자라고 했습니다. 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그 현장에 있었던 제자는 사도 요한 밖에는 없습니다. 나머지 다른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배신자, 비겁자, 겁쟁이, 못된 인간들이라고 하면서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말씀하셨습니다. 위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로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께 대하여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용서하면 내가 삽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진정한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인내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인내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4절에 “사랑은 오래참고.” 7절에는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느리라”했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참는 것입니다. 인내에서 사랑은 완성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사랑은 물거품이 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8-14

  사람들은 모두 기쁨의 좋은 소식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에는 기쁨의 좋은 소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의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수태고지를 듣고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46절에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다음과 같이 찬양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3절에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했습니다. 목자들도 찬송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0절에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바를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그러면 왜 예수님의 성탄의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때문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둘째로,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에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망의 불못으로 떨어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인간이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구원받습니다.

  셋째로, 내가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나에게 최고의 기쁨의 소식입니다. 가정 좋은 사건입니다. 제일 복된 은혜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이 소망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생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러니 성탄은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자의로 말씀하지 않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12:49-50

  세상에는 멈춤이 있습니다. 거리를 주행하는 차는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춰야 합니다. 또 주차장에서 멈춥니다. 기차는 역에서 멈춥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항구에서 멈춥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공항에서 멈춥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멈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춤이 없습니다. 시간은 다만 앞을 향해 아주 빠르게 전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영적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기회에 대하여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 우리들은 누구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누구의 계획대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았습니다. 내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와 같은 허물과 죄를 성찰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회개해야 합니다. 성찰로만 끝나면 성숙이 없습니다. 반복해서 죄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행동하시지 않았습니다. 49절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알려주신 대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50절에는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어떻게 사셨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2023년 송년주일을 보내며 진지한 성찰과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처럼 자의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우선이고 먼저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여러분의 삶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