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23 주일설교(요약1)
2024-11-13 23:08:50
박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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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문이신 예수님1

요한복음 10:1-10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신 목자와 양의 비유는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유목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구원과 영생, 하나님나라 천국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14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셨을까? 첫째로,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영생입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10절은 예수님께서 그 의미를 더 쉽고 정확하게 풀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면 뭡니까?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인의 끝은 어디입니까?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은 불못의 지옥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니라.” 너무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할 수 있는 길이 딱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는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1:20)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지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불못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이웃에, 여러분의 직장과 일터에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2023년에 전도에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영혼구원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기회가 날마다 있지 않습니다. 마귀는 다음에 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현재입니다.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2

요한복음 10:1-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숙을 원하십니다. 최고의 영적 성숙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다 필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 죄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신다고 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인인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을 통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습니다.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했습니다. 여기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죄사함의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시는 구원자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증거하며 외치는 것은 독선적 종교 이기주의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께만 죄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만 하나님나라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려 놓으시고‘이제부터 알아서 살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쉼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즐거움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은 걱정하며 살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근심으로 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누가 이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누가 꺾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누가 범할 수 있습니까? 어떤 세력도 여러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꺾을 수 없습니다. 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 아주 담대하게 예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쉼을 주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1:28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사람은 끊임없이 수고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수고”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은 창세기 3장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수고를 말씀하셨습니다.(창3:16, 17)

  수고는 히브리어로 “에체브”라고 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힘들고 고통스런 일”입니다. 이 수고는 인간의 범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수고는 인간의 편에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 세상을 사는 인간에게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어떤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첫째, 죄의 짐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죄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딱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습니다.

  둘째, 질병의 짐입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 중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몸이 아픕니다. 삶에 아픔이 있습니다. 

  셋째, 가난의 짐입니다. 우리나라는 참 가난했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의 짐에서 벗어났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넷째, 죽음의 집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이 죽음을 구원과 승리로 바꾸어 놓으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님입니다.(요11:25-26)

  그 외에도 염려의 짐이 있습니다. 걱정의 짐이 있습니다. 절망의 짐이 있습니다. 두려움의 짐도 있습니다. 불안의 짐도 있습니다. 실패의 짐도 있습니다. 이 모든 짐들은 인간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딱 한 분, 모든 수고와 짐을 감당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수고의 짐,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와서 예수님께 내려놓으면 예수님께서 쉼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된 안식과 쉼을 누리며 사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1

요한복음 2:1-11

  갈릴리 가나라는 곳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혼인예식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도주였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곳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면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면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예수님이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사건에 어떤 영적 의미와 교훈이 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을 초청하는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2절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떨어진 포도주가 어떻게 채워질 수 있습니까?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서 발효시켜서 포도주를 만들어 내서 떨어진 포도주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이런 곳에 뭐가 필요합니까? 기적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적이 있게 될까요? 예수님을 초청하고, 예수님이 그 곳에 계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가정에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 자녀들이 잘 컸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최고의 은혜이며 복입니다.

  그런데 즐거워야 할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질 수 있습니다. 기쁨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즐거움의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고 기대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마리아 어머니에게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행동하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물이 아귀까지 채워졌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연회장이 맛을 보았습니다. 처음 것보다 더 질과 맛이 뛰어났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기대하는 곳에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기적과 역사가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2

요한복음 2:1-11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렇게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면서 행하신 첫 번째의 기적입니다.

  그러면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을 통해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순종의 사람에게 기적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5절에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웠습니다.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연회장이 포도주의 맛을 보았습니다. 연회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 손님들에게 나갔던 포도주보다 훨씬 맛이 뛰어났습니다. 포도주의 질도 탁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말씀만 하셨을 뿐입니다. 그 말씀에 하인들이 듣고 순종하니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믿고 순종하는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질적인 변화를 주십니다. 물과 포도주는 성분이 완전히 다릅니다. 맛도 다릅니다. 색깔도 다릅니다. 가치도 다릅니다. 질적인 변화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거룩한 질적 변화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처음보다 나중을 더 좋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더 좋은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연회장이 말했습니다. 10절에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나중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질도 좋습니다. 맛도 좋습니다. 색깔도 좋습니다. 가치도 좋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는 언제나 처음보다 다음이 낫습니다. 그리고 다음보다는 그 다음이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뭡니까? 기다림입니다. 기대입니다. 기다리고 기대하면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아닙니다. 세상 것은 처음에는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나쁜 것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1-14

  믿음은 복입니다. 믿음은 보배입니다. 믿음은 은혜입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믿음은 소망입니다.

  여러분 앞에 높은 산이 있습니까? 여러분 앞에 큰 문제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나아가면 여러분 앞에 있는 산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문제도 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가면 높은 산이 평지가 됩니다. 많은 문제도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 죄사함이 있습니다. 이 믿음에 구원이 있습니다. 영생도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천국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모습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러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찾아오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신 그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 가운데에 거하셨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안아주십니다. 첫 아이를 낳고 애기 엄마가, 애기 아빠가 아이를 안는 것처럼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안아주십니다. 너무 귀하고, 정말 소중하다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자녀 된 여러분의 앞길을 책임져 주시고 여러분과 함께 동행해주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며 담대하게, 용기있게,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1-13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입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사람의 모습을 입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빛이라고 했습니다.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했습니다.

  빛에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제1차원의 빛이 있습니다. 가스불, 모닥불입니다. 제2차원의 빛은 전기불입니다. 제3차원의 빛은 원자력입니다. 그리고 제4차원의 빛이 있습니다. 이 빛은 영적인 빛입니다. 구원의 빛입니다. 이 빛이 뭡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떤 4차원의 빛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생명의 빛입니다.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께서 생명의 빛이 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 죄사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은 오직 한 분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께만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능력의 빛입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사람을 바꾸어 놓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하니 3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박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위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 능력의 빛이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성숙의 빛입니다. 빛의 속성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숙입니다. 빛이 있어야 좋은 열매가 있습니다. 빛이 비추이는 정도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결정이 됩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은 성숙의 빛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사람은 영적인 성숙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 좋은 사람이 됩니다. 영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믿음 좋은 성숙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시며, 하나님나라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예수님1

요한복음 1:14-18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이와 같은 요청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8절에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출33:22)

  하나님의 영광을 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120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영혼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모세의 눈이 흐릿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력도 쇠하지 않았습니다.(신34:7)

  그런데 이 세상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경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공격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요셉의 아들로 태어난 갈릴리의 목수였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믿어졌습니다. 고백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난 못 자국을 보지 않고,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팔일이 지났습니다.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부르셨습니다. 손에 난 못 자국을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8절에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게 되면 영혼의 질병이 사라집니다. 인생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험한 세상에서 예수님을 통해 받게 될 영광을 기대하며 소망으로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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