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씩 보내신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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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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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민으로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생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의 사람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영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서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실 때에 둘씩 보내셨을까요? 첫째로, 법적 증거를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둘이라는 숫자는 법적 증거에서 최소한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19장 15절에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했습니다. 함께, 같이 목표를 정하고 전도해서 법적인 거룩한 증인이 되고, 함께, 같이 전도해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혼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박해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전도하면 서로를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위로와 격려는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세운 아주 큰 힘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함께, 같이 기도하고 격려해서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성숙을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숙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성숙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둘씩 짝을 지어 보내면서 신앙이 성숙할 것을 훈련하셨습니다. 인격이 성숙할 것을 훈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짝을 지어서 보내셨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잘 어울리는 팀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팀도 있었습니다. 잘 어울리는 팀은 감사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팀은 참고 인내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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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를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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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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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나라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얻으며,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의 사람이 되는 것일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실 때에 전도에 대한 방법과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둘씩 짝을 지어서 함께 보내셨습니다. 7절에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둘씩 가게 했습니다. 함께 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할까요? 교회의 공동체성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공동체성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공동체였습니다. 함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같이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같이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7절의 말씀을 다시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했습니다. 전도할 때에 만나게 되는 악한 세력이 있습니다. 귀신입니다. 전도는 뭡니까? 마귀의 결박을 부수는 것입니다. 마귀의 결속을 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전도자는 반드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기도입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갈 때에 지팡이만 들고 신발만 신고 가라고 했습니다.(8)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의지하고 가면 예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11절에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전도자를 방해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때에 발 아래에 있는 먼지를 떨어버리고 나오라고 했습니다.(11) 여기서 먼지는 “죄성”, “세속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먼지를 떤다는 것은 “당신의 죄에 나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죄의 사람으로 살지 않겠습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핍박을 당해도 우리는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온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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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예수님(네팔 선교지 방문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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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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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께 죄사함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습니다. 그 죄인 된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사람이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뭡니까?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을 얻습니다. 구원의 유일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이며, 그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교회창립 70주년을 기념해서 해외에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 중에 한 나라가 네팔입니다. 네팔은 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위쪽으로는 중국, 아래로는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29,187,037명(2022년)입니다. 네팔어를 사용합니다. 네팔은 87%가 힌두교입니다. 불교가 9%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1.4%입니다. 이 나라에서 송현주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송현주 선교사를 통해 미트러교회를 세웠습니다. 2022년 5월 1일에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미트러교회의 현지 목회자는 진 나라얀 목사입니다. 방주 센타는 2022년 7월 5일에 완공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방주센타의 현지 목회자는 가겐드라 목사입니다. 네팔이라는 힌두교와 불교의 나라에 하나님의 교회와 방주센타가 우리교회를 통해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며 놀라운 역사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배당을 세우는 것은 멈출 수 없고, 중단하면 안 되는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딤전2:4) 그러면 언제까지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까요? 주님 재림해 오시는 날까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입니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땅 끝, 온 천하, 모든 사람에게 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더운 여름날의 얼음냉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잠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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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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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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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값이 많이 나가는 귀중품을 보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보석이 보석이 아닙니다. 진짜 보석이 있습니다. 최고의 보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각 가정과 교회에 허락하신 자녀들, 아이들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녀들과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하며 대해야 할까요? 첫째로, 존재의 가치를 알게 해야 합니다. 영적인 자존감을 세워주워야 합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자녀는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자녀들에게 그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자녀들은 존재의 가치를 알게 되고, 세상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악한 사상과 문화에 휩쓸려가지 않습니다. 둘째로, 실족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족에 대하여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아이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게 한 후 바다에 빠뜨리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아이를 실족하게 한 사람에게 연자 맷돌을 목에 매게 해서 바다에 빠져 죽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아이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에 대하여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예수님께서 예수님과 어린 아이를 동일시 하셨습니다. 5절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는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결례를 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 칭찬해야 합니다. 아이를 실족하게 하지 않고, 그 아이를 칭찬해야 합니다. 축복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하는데 있어서 칭찬은 아주 중요합니다. 축복은 너무 귀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셨습니다. 축복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아이들을 칭찬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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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며 받드신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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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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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효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나 부모에게 효를 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강력한 징계와 심판이 따름도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에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러면 왜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를 행해야 할까요? 모든 인간의 근본, 출발이 하나님인 것처럼 자녀들의 시작이 부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는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를 행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어떻게 효를 행하셨을까요? 첫째로, 순종했습니다. 열두 살 때에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 집에 갔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인들에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순종했습니다. 둘째로, 존중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셉을 존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요셉과 함께 목수의 일을 했습니다. 목수는 힘든 직업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목수의 일을 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육신적인 아버지 요셉의 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요셉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받들었습니다. 51절에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받들었다는 것은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섬겼다는 것입니다.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드렸다는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가정의 생계를 누가 감당해야 합니까? 장남인 예수님이 해야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어머니를 돌봐드렸고, 동생들을 이끌고 가정을 세우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훌륭한 효자였습니다. 착한 효자였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에게 든든한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모를 받들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며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처럼 효자, 효녀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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