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소리 |
예레미야 30:18-20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기간은 70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차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의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사를 말씀하셨습니다. 19절에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면 좋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로, 번성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19절에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번성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창대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왕성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 번성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 잘 됨은 없습니다. 둘째로, 존귀함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19절 뒷부분에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존귀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감사함으로 높임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런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높이셨습니다. 다니엘 6장 28절에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하나님은 감사의 사람을 존귀하게 하십니다. 셋째로, 대적들을 물리쳐주신다고 했습니다. 20절에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쳐주십니다. 감사하면 대적들을 막아주십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없애주십니다. 그래서 감사가 능력입니다. 감사가 승리입니다. 감사가 구원입니다. |
맥추절을 지키라 |
출애굽기 23:16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의 절기를 주셨습니다. 유월절을 주셨습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주셨습니다. 땅을 주시고,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수장절을 주셨습니다. 생존하게 하시고, 저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본분입니다. 본질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감사의 절기는 맥추절입니다. 이스라엘은 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곳에 정착했습니다.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농사의 첫 열매를 가져와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맥추절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을 부르는 다른 용어가 있습니다. 초실절입니다. 첫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돌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돌봄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시작부터 마침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일용할 것을 공급해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루를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일용할 것입니다. 먹어야 합니다. 마셔야 합니다, 입어야 합니다. 잠을 자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로, 역경 속에서 지켜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주 긴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터널의 끝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거두어들이게 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거두어들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쓰며 발버둥을 쳐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거두어들이는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모두 헛수고입니다. 허탕입니다. 남는 것은 탄식과 한숨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2021년의 아주 어려운 최고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합니다. |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
요한복음 10:11-18 |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구주로 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허물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구주,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는 사람들에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명확하게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이해를 잘 할 수 있도록 목가적인 표현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아십니다.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들을 알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처해있는 상황을 아십니다. 처지를 아십니다. 마음도 아시고 생각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알아주시고 이해해주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사랑하십니다. 어느 정도까지 양들을 사랑하실까요?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양들을 사랑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11절에서 18절까지 네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11절에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에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7절에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리고 18절에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예수님께서 이 정도로 양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는 절망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할 것이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세상을 담대하게, 용기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어떤 곳으로 인도하실까요?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만 안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양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양의 시력은 최대 3미터입니다. 시력이 나쁜 양은 70센치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의 인도를 꼭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
마태복음 1:16 |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며 아름답고 귀한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몇 번 나올까요? 약 535번입니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 1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가복음 1장 1절도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아주 담대하게 소리쳤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시대에 세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첫째로,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인간의 허물과 죄를 해결하는 영적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의 허물과 죄를 사함 받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어떤 무엇으로도 죄사함의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둘째로,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증거하는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 천국의 선지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을 증거하셨습니다. 셋째로, 왕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5장 3절에는 이스라엘 나라의 전체 왕이 된 다윗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중의 왕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존귀한 왕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왕인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2장 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왕이신 예수님의 인도와 지시를 따라 살면 넉넉한 승리자가 됩니다. |
샘이신 예수님 |
스가랴 13:1 |
사람들은 모두 큰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큰 바다, 큰 호수, 큰 물, 큰 쓰나미에 시선을 둡니다. 작은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 구세주는 샘이라고 했습니다. 1절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그러면 왜 스가랴는 이 세상에 메시야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샘이라고 했을까요? 샘이 의미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샘은 마르지 않습니다. 깊은 샘은 아무리 사막이라 할지라도 마르지 않습니다. 깊은 샘물은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할까요?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긍휼, 예수님의 자비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샘이 되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누구에게까지 왔습니까?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까지 왔습니다. 둘째로, 샘은 생명을 줍니다. 스가랴는 샘이 되시는 예수님께 대하여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고, 비극적 인생이 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이 죄는 인간으로는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한 가지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샘물로 씻어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샘물로 씻어주시는 것이 뭡니까? 예수님 보혈의 피로 죄를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지옥의 사람에서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샘은 능력을 줍니다. 샘물을 마신 사람은 심한 갈증에서 시원함을 얻습니다. 샘물을 마신 사람은 탈진에서 새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샘물을 마신 사람은 소성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샘은 능력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소성케 하고 능력 있게 하는 샘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께서 생수의 강을 공급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생수의 강이 뭡니까? 39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보혜사 성령님을 받게 되면 강한 자가 됩니다. 능력자가 됩니다. 영적 실력자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권능의 사람이 됩니다. 큰 능력의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
거룩한 목마름으로 사신 예수님 |
요한복음 19:28-30 |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목마름으로 사셨습니다. 28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목마르다는 말씀을 단지 십자가에서 육신적인 목마름으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물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많이 목이 마르셨습니다. 그것과 함께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영적으로 아주 목마른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갈급한 삶을 사셨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어떤 것에 목마른 삶을 사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거룩한 목마름으로 사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사랑에 목마른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예수님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사랑의 최고 정상은 어디입니까?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큰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큰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큰 멸시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여전히 십자가에 계셨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인간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죄사함은 없습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견디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사랑에 목마른 삶을 사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영혼에 목마른 삶을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그래서 예수님은 영혼이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영혼에 대한 거룩한 목마름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우리 예수님은 영혼의 구원을 위한 목마른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혼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다시 재림해오실 것입니다. |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
누가복음 23:33-46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요?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 나라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모함과 시기와 질투가 예수님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가 자신들의 지배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아주 탁월한 능력이 있는 지도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서 십자가에서 처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사망이 인간에게 들어왔습니다. 사망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둘째, 육체의 죽음이 있습니다. 육체의 몸이 죽는 것입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영원한 불못의 지옥을 피하고, 가장 황홀하고 찬란하고 영광스러우며 아름다운 하나님나라 천국을 얻는 한가지 길, 통로, 유일한 방법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과의 원수의 관계도 청산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러므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며 십자가 구원의 감동과 감격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교회를 위한 수고와 희생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다 이루신 예수님 |
요한복음 19:28-30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마지막 말을 하셨습니다.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며 죽음에 이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6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 계셨습니다. 그 6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가장 잔인하고 잔학한 고통과 괴로움과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양손에 큰 쇠못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두 발에도 큰 대못이 박혔습니다. 몸은 채찍에 맞았습니다. 날은 뜨거웠습니다. 파리 모기들이 피냄새를 맡고 몰려왔습니다. 사정없이 예수님의 몸을 공격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집행했던 로마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네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입었던 옷을 나눠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속옷을 취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께서 다 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조롱과 멸시를 퍼부었습니다. 진짜 그리스도라고 하면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 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습니다. 기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비난과 조롱과 멸시를 퍼붓는 사람들에 대하여 욕을 하거나 저주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측은한 모습으로 내려다보시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실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에 놓고 마지막 한 마디를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30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외침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모든 저주에서 행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다 이루었다”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날마다 구원의 감동과 감격으로 승리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
포로 된 자를 놓아주신 예수님 |
누가복음 4:18-21 |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그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포로라는 것입니다. 이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람은 가장 불쌍합니다. 불행합니다. 아주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그 마지막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인간이 참 안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로에서 풀어주시려고 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으로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예수님으로 갇힌 자가 풀려납니다. 예수님으로 죄의 노예와 종이 자유인이 됩니다. 그러면 인간이 예수님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기 전에 어떤 것에 포로가 된 존재였을까요? 첫째로, 옛사람의 포로였습니다. 옛사람의 포로라는 것은 인간 자체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아주 철저하게 타락했습니다. 부패했습니다. 죄로 오염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나도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놀라운 변화가 있게 됩니다. 주인이 바뀝니다.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죄사함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로, 마귀의 포로였습니다. 인간의 영적 상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기 이전에는 모두 마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마귀에게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죽음의 포로였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죄가 사람에게 들어왔습니다. 그 죄의 결과는 뭡니까?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음의 종이었습니다. 사망에 잡힌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망의 종이 아니고 영생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사망은 뭘까요? 이제는 영광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승리가 되었습니다. 신령한 기대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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