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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주일 설교 요약(종합 3)
2023-12-01 07:55:32
park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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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1:35-39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출생했습니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완전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곧 누구입니까?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38절에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도로 시작해서 전도로 생을 닫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로 외치신 것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칠십 명을 따로 세웠습니다. 둘씩 짝을 짓게 했습니다.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쁘게 전도하셨던지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도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혔습니다. 대제사장에게 끌려갔습니다. 심문을 받았습니다. 로마에 정치범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한 편 강도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허물과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인류의 죄 문제는 영원토록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죄인은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만 하나님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만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전해서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짜 예수님의 사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하나님

마태복음 28:20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허락하신 자녀들이 아주 소중합니다. 우리교회에 보내주신 아이들이 너무 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정에 허락하신 자녀들, 우리교회에 보내주신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압 광야에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명기 6장 6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돌봐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4장 1절에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둘째로, 긍정적인 신앙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부정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아니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긍정의 믿음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쓰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이루십니다.

  셋째로, 성실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30세에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성실하게 행하셨습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셨습니다.(막1:35) 예수님께서 메시야인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성실로 감당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4:16-26

  사람에게는 육신의 몸만 있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신의 몸만 생각합니다.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그의 인생에 질서가 없습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흑암의 어두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먼저인지 영적인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가셨습니다.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아셨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그녀의 인생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 여인이 자기 신상의 부끄러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대화의 주제를 예배로 돌렸습니다. 예배 장소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는 어떤 곳에 있든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릴 필요가 없네”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처음부터 공동체로 드리는 것입니다. 21절에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께서 “너희가” 했습니다. 단수가 아닙니다. 복수입니다. 예배는 공동체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같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영과 진리는 뭡니까? 온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내 공로가 아닙니다. 내 의가 아닌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안식을 범한 자에게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게 하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니라.” 이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에 계셨던 예수님

누가복음 2:41-51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셨습니다.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켜야 할 사명이 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모가 유월절에 열두 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외국에서, 이스라엘 전국 곳곳에서 예루살렘에 많게는 3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유월절 행사를 마쳤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룻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같이 동행하고 있는 줄로 알았던 열두 살 예수님이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왔던 길을 돌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삼일째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성전에 갔습니다. 그 곳에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그렇게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49절에 “에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 성전에 있는 너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 성전에 계셨던 것처럼 오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피로 값을 지불하고 사신 하나님 교회에서 예배자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배자를 만나주십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그의 앞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몇 가지의 ‘ㄲ’이 필요합니다. ‘끼’가 있어야 합니다. 끼는 열정입니다. ‘꾀’도 있어야 합니다. ‘꾀’는 지혜입니다. ‘꾹’도 있어야 합니다. 꾹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ㄲ’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꼭’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꼭 하나님 교회에서 예배자로 있어야 합니다.

전도를 명령하신 예수님 1

마태복음 28:18-20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공생애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사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치유를 행하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고 고난 받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도를 명령하셨습니다. 그것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은 교회와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명령과 부탁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것이며,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라는 예수님의 명령과 부탁을 받았고, 들었고,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전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뭡니까? 범죄입니다. 과연 어떤 범죄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불순종은 정말 큰 죄입니다. 아주 큰 엄청난 범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함으로 타락했습니다. 사망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실낙원을 했습니다. 사울이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가장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거두십니다. 쓸모없는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그 다음 24절에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전도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전도를 명령하신 예수님2

마가복음 16:15-16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모임입니다. 그 거룩한 모임에 누가 있습니까? 우리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성도들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를 교회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뭐가 됩니까?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스승이 가졌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스승이 갔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스승이 했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제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처럼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맡겨진 일에 불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장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나라 천국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영혼은 영원한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니 강제로라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긴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맡겨진 일에 불충성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이 확실합니다. 반면에 지옥도 확실합니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확신한다면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도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뭡니까?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확신하는 사람은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옥을 확신하는 사람은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라고 명령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6:38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까?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게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을 받고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을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뭘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죄사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하나님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요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행복이 있습니다.

  1885년에 4월 5일에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조선에 오셨습니다. 이 민족에게 구원의 빛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136년이 지나났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에서 세계 9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군사력에서 세계 6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2021년에 25,25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복음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은 우리나라에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주셨습니다. 은혜에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교회도 하나님의 거룩한 선교사역에 동참해서 한 부분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에 캄보디아와 미얀마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태국 창의유치원을 개원하는데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2021년에는 인도와 태국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네팔에 예배당을 건축할 예정입니다.

  이와 같은 사역을 위해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선교회에서, 속회에서 헌금을 봉헌해주셨습니다. 모두 하나님나라 천국을 세워가는 사역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주면 하나님께서 흔들어서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주는 것이 복입니다.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0:10

구약시대에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던 사르밧 여인은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봉헌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까지 주실까요?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풍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어떤 분입니까? 풍성케 하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풍성케 하시는 분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영적 생명을 풍성케 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1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둘째 사망은 영원한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으면 둘째 사망의 해를 피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을 얻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삶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의 감동과 감격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뭡니까? 삶의 풍성함입니다. 이것은 세상 소유와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 지위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언제나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변함없이 만족한 것입니다. 현재적 천국의 삶입니다. 삶에서 누리는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바탕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본질입니다. 그랬더니 삶이 풍성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날마다, 모든 것에서 행복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삶에 생명을 아주 풍성케 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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