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21년 주일 설교 요약(종합 1)
2023-11-30 10:23:54
박노성
조회수   56

안심하라고 하신 예수님1

마태복음 14:22-33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 노인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빈들에 있었습니다. 남은 것을 거두었습니다.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자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23절에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혼자 거기 계시더니” 했습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와 지는 자의 영적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공자와 실패자가 영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갈릴리 바다를 건넜습니다. 배가 육지에서 수리가 떨어졌을 때 갈릴리 바다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물결이 높아졌습니다. 배가 흔들렸습니다. 위기를 만났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니 갑자기 큰 바람으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제자들이 영적으로 큰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험악합니다. 힘든 세상입니다. 고난의 물결이 언제 우리 앞에 닥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돌봐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평안이 있게 하십니다. 순적함을 주십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물결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해서 보냈습니다. 22절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가라고 해서 갔습니다. 저들은 예수님 없이 갔습니다. 그런 저들이 물결로 인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가라고 해서 가면 안 됩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예수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제자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있는 갈릴리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심하라고 하신 예수님2

마태복음 14:22-33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제자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갈릴리 바다에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아셨습니다.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고, 예수님 없이 온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령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7절에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습니다. 무서웠던 광풍미 멈췄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고요해졌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위기 가운데 찾아오셔서 안심하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실 때에 우리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요? 첫째로, 삶이 신선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왔습니다. 예수님 없이 왔습니다. 그들에게 위기와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견고해졌습니다. 든든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영적으로 신선해졌습니다.

  둘째로, 삶이 쉬워집니다. 기도하지 않고 간 제자들, 예수님 없이 갈릴리 바다를 건넌 제자들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풀어졌습니다.

  우리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우리는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면 너무 쉽습니다. 어떤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힘은 빼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은 쉬워집니다.

  셋째로,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후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할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배안이 시장보다 더 시끄러웠습니다. 각종 소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니 모든 소음이 사라졌습니다. 배안이 평안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면 세상 소음이 사라집니다.

죄인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

에베소서 1:7

  에덴동산에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침략했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이렇게 유혹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탄의 말을 듣고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먹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서 인간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입니다. 인간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으로 출생합니다. 영적인 나비효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인인 인간이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불못의 지옥을 피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유일한 길이 딱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와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예수님께 떠넘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인인 인간이 살 수 있습니다. 죄인이었던 인간이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4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그리고 왜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말 구유에 누우셨을까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죽음을 맞아야 할 인생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부르짖어야 할 우리의 절규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시며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께로 오면 모든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을 유업과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

마태복음 1:18-20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예수님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성령잉태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리고 20절에는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그 분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 되는 것입니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성령잉태를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리아 동정녀 탄생을 부인합니다. 그러면 아주 치명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죄인입니다. 그러면 죄인인 예수님이 어떻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 죄인으로 태어났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십자가 죽음이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부활도 거짓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도 가짜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이 없습니다. 영원한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자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창조자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십니다. 

  그렇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성령잉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힘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성령잉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고백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4:16-26

  사람에게는 육신의 몸만 있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신의 몸만 생각합니다.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그의 인생에 질서가 없습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흑암의 어두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먼저인지 영적인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가셨습니다.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아셨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그녀의 인생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 여인이 자기 신상의 부끄러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대화의 주제를 예배로 돌렸습니다. 예배 장소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는 어떤 곳에 있든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릴 필요가 없네”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처음부터 공동체로 드리는 것입니다. 21절에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께서 “너희가” 했습니다. 단수가 아닙니다. 복수입니다. 예배는 공동체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같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영과 진리는 뭡니까? 온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내 공로가 아닙니다. 내 의가 아닌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안식을 범한 자에게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게 하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니라.” 이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4:1-7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에게 큰 근심과 두려움과 공포가 짙은 안개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4장입니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근심과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현실의 이야기가 아닌 저 세상 천국을 말씀하셨을까요?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천국은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걱정, 근심, 두려움, 아픔, 시험, 환난 등의 문제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이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립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천국은 우리가 바라고 꿈꾸고 기대하는 모든 행복의 최상급입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육신이 죽음을 맞는 첫 번째 사망이 지나갔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두 번째 사망도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천국에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

  애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눈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 천국에 가면 영광의 극치를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 천국이 가장 좋은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그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사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이 그 나라, 그 고향, 그 집에 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여기서 “내게 주신 자”는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며, 이차적으로는 예수님 믿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나라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 천국에 이르는 길과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살게 하는 유일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구원자가 세상에는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왕이신 예수님

요한계시록 1:17-20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셨던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메시야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 분은 왕이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했던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걷지 못했던 사람이 걸었습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았습니다.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남은 것을 거두었습니다.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왕이셨습니다.

  그랬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조롱과 멸시를 퍼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갇히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오백여 명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정복자가 되셨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사망을 이긴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을 정복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만주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에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이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지옥에 던져놓고 다시는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철저하게 잠그시고, 그 열쇠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망과 죽음과 허무의 정복자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주인이신 예수님

고린도전서 6:19-20

  예수님 믿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크게 착각하며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입니다. 몸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뭡니까? 주님 것입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값으로 사셨다고 했습니다. 값으로 사셨다는 것이 뭡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 값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예수님의 사람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데 대하여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인 된 인생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1절에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이며,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원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로마서 2장 5절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러면 과연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죄인은 할 수 없습니다. 죄인인 사람이 해보겠다는 것은 죄인 된 자기 신분과 위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때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 죽음이 내 허물과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한 죽음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의 피 값으로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의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

누가복음 16:19-31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해서 틈이 생겼습니다. 죄인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인의 운명은 불못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된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영적 다리입니다. 그 다리를 밟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을 십자가로 화평케 하셨습니다. 원수의 관계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자녀의 관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감동입니다. 감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 사이에 평강의 왕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죄사함은 없습니다. 영생은 없습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옥으로 떨어질 불못의 사람이었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마귀들을 위한 불못의 지옥에 처해집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은 사람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옥으로 빠져가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8절에 “만일 네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제발 지옥만큼은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옥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옥의 영벌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려고 평강의 왕이 되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과 아픔과 수치와 조롱을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 놓으신 하나님나라 천국을 절대로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열어 놓으신 하나님나라 천국을 향해 기대와 감동으로 날마다 올라가고 전진하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5:18-27, 16:31-33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의 말씀입니다. 13장에서 섬김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14장에서는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말씀하셨습니다. 15장에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제자들이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겪게 된다고 했습니다. 박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환난과 박해의 정도가 아주 심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 이하를 보면 ‘미워한다’는 말이 일곱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워한다는 말보다 더 강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박해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절에는 출교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세상이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미워하고, 교회를 공격할까요? 예수님께서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미워함으로 세상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18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할 줄을 알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악하다고 책망했습니다.(요7:7) 그러니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고, 예수님을 미워하니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미워합니다.

  둘째로,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미움을 받습니다. 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 믿기 이전에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였으나 예수님 믿은 후에는 우리의 소속이 영생의 사람이 됐습니다. 천국의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미워합니다.

  셋째로, 무지하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더욱 미워합니다. 21절에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세상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안에서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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