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의 제자를 세우신 예수님 |
마가복음 3:13-19 |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열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열둘은 완벽의 숫자인 3에 땅과 관련이 있는 숫자 4를 곱한 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 대한 통치의 권세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곧 통치자는 아닙니다. 세상 모든 통치의 권세자는 누구입니까? 그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으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위임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세와 권능을 위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열둘의 제자들을 세우셨을까요? 첫째로, 필요해서 세우셨습니다. 13절에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주권적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도 필요해서 부르셨습니다. 세상적이고,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조건과 기준을 따지지 않고 예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드려서 예수님께 아주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함께 하고 싶으셔서 세우셨습니다. 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향한 주님의 관심과 배려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에서는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과 동행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전도하게 하시려고 세우셨습니다. 14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전도입니다. 그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을 훈련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서 영혼을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전도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여호와께 감사하라 |
시편 136:1-3 |
시편 136편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감사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편 136편은 감사로 시작해서 26절까지 있는데, 26절 마지막 절도 감사로 마쳐지고 있습니다. 26절에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입니다. 감사입니다. 그런데 1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절까지 한 절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말씀하고 있는 시편은 없습니다. 그러니 시편 136편은 최고의 감사의 시입니다. 최고의 감사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능력을 행하십니다. 치유를 주십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세우실 때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를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그 사람의 마음, 정신, 그의 사고방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둘째로, 입술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마음, 복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입술을 통해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묻혀있는 보화와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우리의 삶을 살려내는 입술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물을 드려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음과 보물은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보물은 언제나 함께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살면 석탄재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감사하고, 입술로 감사하고, 예물을 드려 감사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 인생이 됩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골로새서 3:15-17 |
신약성경에서 최고의 감사로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에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16절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감사할 조건이나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허락하셨던 가시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첫째로, 바울은 마음이 아주 약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둘째로, 좋지 못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교회의 핍박자였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 혼자였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쓸쓸했습니다. 고독했습니다. 넷째로, 바울은 사도의 자격 시비에 시달렸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직접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바울은 사도의 자격 시비에 시달렸습니다. 다섯째로, 바울은 언변이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6절에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했습니다. 여섯째로, 바울은 신체적인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출생했습니다.(고런15:8) 일곱째로,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안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머리로 올라가서 두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간질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의 가시들에 대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고후12:9)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가시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약함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가시 중에서 능력을 행하십니다. 약함 중에서 강함을 허락하십니다. 기적의 문을 여십니다. 치유의 역사를 주십니다. |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 |
마가복음 6:1-6 |
우리의 최고의 자랑이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그 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상담자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그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4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그러면 왜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첫째로, 놀라움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2절에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보고 듣고 놀란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구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놀라움을 넘어 믿음까지 가는 것입니다. 경이로움을 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로,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3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은 목수라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벌써 죽었고, 어머니는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능력과 기적과 역사를 행해도 예수는 목수일 뿐이고, 마리아의 아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사렛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셋째로, 믿지 않았습니다. 6절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안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으니까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것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6절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지 않았던 나사렛 사람들은 영혼을 도둑맞는 영적 손실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곳에 구원은 없습니다. 영생은 없습니다.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가족이라고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3:31-35
세상에는 많은 언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어떤 것일까요? 아마도 사랑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름다운 말은 가족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 가정에 가족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시작, 우리의 삶의 진행, 우리의 삶의 마감이 모두 가족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가족은 너무 소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가족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어서 세세무궁토록 영적인 가족의 영광과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이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미쳤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가족들까지 예수님께 대하여 미쳤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자셨습니다. 그 분은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영접한 이들이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이 됩니다.
둘째로, 예수님 곁에 끝까지 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건들이 있습니다. 맑은 해가 뜨는 날이 있습니다. 반면에 흐린 날도 있습니다. 그때에 끝까지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가족입니다. 그것처럼 영적인 가족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 곁에 남는 자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께서 열둘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이제는 공통적인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을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습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부름과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영적 가족입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4:35-41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가버나움에서 하나님나라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35) 저편은 거라사입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 동북쪽입니다.
그러면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갈릴리 호수 위쪽에 헐몬 산이 있습니다. 헐몬 산의 높이는 2,814미터입니다. 그렇게 높은 헐몬 산에서 찬바람이 갈릴리 호수 쪽으로 불어옵니다. 반면에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210미터가 낮습니다. 따뜻합니다.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기운이 만나면서 갑자기 갈릴리 바다에 큰 광풍이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갈릴리 바다는 언제나 위험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앞에 높은 헐몬 산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인생을 향해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그 바람으로 인해서 우리 인생에 큰 광풍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우리 인생에 큰 광풍이 닥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동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38절 앞부분에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다고 했지만, 정말 실제적으로 주무시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응원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만난 광풍에 대하여 믿음과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잘 대처하도록 간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며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확신해야 합니다. 큰 광풍 앞에서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큰 광풍이 예수님 말씀 한 마디에 힘을 쓰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순식간에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고요해졌습니다.
이 사건을 겪은 제자들이 심히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41절에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이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생의 광풍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 |
요한계시록 1:8 |
시작과 끝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예수님께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역사의 통치, 주관자가 누구일까요? 그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해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해 오실 때에 어떤 일들이 있게 될까요? 역사의 완성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예수님을 통해 역사가 완성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역사가 성취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각 개인에게도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 곳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 발 앞에 엎어졌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이 말씀은 뭡니까? 예수님은 각 개인에게도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6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처음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셔서 사도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으셨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손을 얹으시고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여러분을 치유하십니다. |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님 |
요한계시록 22:16 |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분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무엇입니까?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새벽별이 아닙니다.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저녁별은 하루의 끝입니다. 새벽별은 새 날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광명한 새벽별로 재림해 오실 때에 모든 박해와 곤경에서 끝까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첫째로, 구원이 완성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음으로 이미 벌써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해 오시면 살아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성도들은 공중으로 들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죽음을 맞은 성도들은 부활의 몸을 입고 나오게 됩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상급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상을 주시지 않습니다. 상은 잘한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잘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교회에 잘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이 상은 단체상이 아닙니다. 개인상입니다. 자신이 행한 것에 따라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니 핑계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행한 대로 받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왕 노릇하게 됩니다. 광명한 새벽별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해 오실 때에 일어나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러니 성도의 영광은 대단한 것입니다. 성도가 누릴 은혜와 축복은 생각한 것 훨씬 그 이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8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심판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세세무궁토록 왕 노릇하게 됩니다. 통치자가 되는 것입니다. |
댓글